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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5-15
  • 한형동 칭다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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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날 이다. 이 뜻깊은 날을 맞으니 우리에게 고일한 가르침을 주고 입적하신 불교계의 실천하는 지성이셨던 법정스님이 새삼 그립다. 이는 오늘날 혼탁한 사회와 오염된 인성이 고결한 무소유의 수행자 법정을 소환한 것이리라.

중국 홍인(弘忍)대사가 제자들에게 게송(偈頌)을 지으라고 했다. 제자 신수(神秀)가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티끌이 없도록 하리라(心如明鏡臺 勿使惹塵埃)”고 지었다. 이에 다른 제자 혜능(慧能)은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本來無一物),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요(何處惹塵埃)”라고 대응했다. 바로 이 “본래 무일물”이라는 구절에서 선어(禪語)로서의 ‘무소유’ 개념은 탄생되었다.

불교서적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제자가 세존에게 오동나무 꽃잎을 공양하자, 세존이 방하착(放下着) 하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나온다. 방하착은 “이 세상은 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니 집착을 놓으라”는 뜻이다. 법정스님은 자신이 기르던 난초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놓고서야 큰 자유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 후 그는 대승불교의 근본 교리인 공사상(空思想)과도 통하는 무소유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를 수행의 계명처럼 활용했다.

법정이 탁월한 수행자로서 평가 받는 것은 경전과 부처님 말씀을 성실히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는 화엄경을 숭상하여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다”라는 일즉다(一卽多) 사상을 자주 설법했다. 개체적 존재가 전체의 모습을 비추니,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이 진리의 세계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풀꽃 한 송이가 들녘에 봄 물결 일으키듯 이웃의 빛이 되어주는 게 아름다운 삶”이라고 역설했다. 법정은 남에게 주어, 자신은 텅 빈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오묘 속에, 산촌을 밝히는 달과 별들을 초청해 가난한 성찬을 함께 나누어 온 철인(哲人)이다.

그는 불교의 후학으로서 달마대사 등 중국 선사들의 가르침도 명쾌하게 해석하고 신봉했다.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達磨)는 도(道)에 이르는 길에는 원리와 실천의 이입(二入)이 있고, 실천에는 “억울함을 참고, 무슨 일이든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사물을 탐하지 말고, 진리대로 살라”는 사행(四行)이 있다고 했다. 법정은 수행의 두 가지 길로서 자기형성의 지혜와 이웃에 대한 보살핌의 자비를 들었다. 특히 그는 자비의 산물인 나눔의 삶을 자기 인생의 잔고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달마대사의 이입사행에 부족함이 없는 도(道)로 가는 실천이다

중국의 혜가(慧可)가 달마대사(達磨大師)에게 법(法)을 구하자, 달마는 신심(信心)이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혜가는 바로 칼을 꺼내 자신의 팔을 베었다. 그러자 달마는 혜가에게 “부처님의 심인(心印)은 남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법정도 불자들에게 “각자가 모두 부처이니 부처를 다른 데서 찾지 말라”고 가르쳤다. 달마와 법정의 불심(佛心)에 화엄경의 요체인 “일체가 오직 마음에서 만들어 진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핵을 이루고 있음을 읽는다. 또 이 가르침은 “현상은 실체가 없고, 오직 식(識)만이 존재한다”는 유식무경( 唯識無境)을 주장한 인도의 유가행파(瑜伽行派) 철학사상이기도 하다. 

중국 조주(趙州)선사가 스승인 남천(南泉)선사에게 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남천은 “도는 평상의 마음일지니, 도를 통달하면 허공같이 트여 넓어진다.”라고 가르쳤다. 이에 조주선사는 득도한 후 “부질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세상의 좋은 시절이로세”라고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 법정도 번뇌가 연소된 참 세상을 찾아, 송광사의 불임암과 강원도 오두막집에서 소욕지족(少慾知足)의 평상심으로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선의 최고 경지)을 위해 정진함으로써 최고의 오도송(悟道頌)인 무소유를 실천해 보였다. 

법정은 미래 보다는 현재를, 설법보다도 실천을 중시한 불교계의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그는 연기설(緣起說:사물은 원인이 있어 성립함)에 입각하여, “순간 순간의 삶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석가모니가 “과거나 미래에 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온전하라”고 가르쳤듯이, 법정도 “현재를 아름답고 후회 없는 순간으로 가꾸라”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강조하였다.

한편 법정은 문명의 충돌을 예견하는 세상에 친히 종교계 화합의 시범을 보인 진정한 박애와 평화의 화신이었다. 그가 김수환 추기경과 우정을 나누며, 명동성당에서 강연한 장면은 종교계의 벽을 허물고 화합정신을 보여준 참신한 충격이었다. 중국 임제(臨濟)선사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서는 곳 마다 진리의 땅이 되리라”고 외쳤듯이, 법정은 가는 곳이 성당이든 사찰이든 신앙인에게는 그 곳이 바로 진리의 전당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법정은 생의 마무리에 대해 “죽음도 삶의 모습이니 거부하지 말라.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순간과 기꺼이 작별하는 것일 뿐, 죽음도 아름다운 마무리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라고 설파했다. 이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경지에 선 법정스님의 고결한 울림의 소리다. 이 울림은 위대한 수행자의 열반송(涅槃頌)이 되어, 오늘도 도의 미로에서 번뇌와 집착을 놓지 못 하는 우리 중생들의 귓가에 청아한 연꽃의 복음처럼 여울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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