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소리
박원의 作
기억은 하얀 소리를 낸다
아버지 유품에서 단소가 나오던 날
새벽은 하얀색이다
더듬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휑한 지공에서 매듭진 소리가 난다
여름 소란이 끝난 가을
평소 거실에 앉아 소리를 짓던 당신
내가 취구에 입김을 불어 넣자
물 같은 당신 떠오른다
평소 마음 다칠까 소리를 대신하시던
아린 말 불어내도 속이 시끄럽다는 당신
오늘은 청송곡이 되어 있다
음색이 좋아 말하기 좋아하시더니
그래도 그늘이 안식이 되었던지
서랍장 안쪽에 손때가 묻어 있다
영정이 지나간 거실
아랫배에 힘을 줘도 소리가 지공에서 나오질 않고
내 늑골 가장 아린 곳에서 가늘게 새고 있다
▶ 박원의 시집 「강물의 언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