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理想)도 없고 위대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인류의 운명과 정치를 좌우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카뮈의 말이다. 자신의 무지와 착각 속에 국가의 지도자나 정치가가 되겠다고 나서는 자들에 대한 통절한 비판이다.
요즈음 국운이 달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며 한층 가열되고 있다. 선거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다'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축제는 커녕 선거의 본령인 정책과 비전, 인물과 기대는 간 곳없고, 극단의 혐오, 정의와 불의의 가치전도, 범법자의 활보 등으로 미증유의 카오스(chaos: 대 혼돈)상태에 빠져있다. 이에 유권자들은 정치불신과 퇴행을 느끼면서 심한 정신적 홍역을 겪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 후보자의 34%가 전과자라고 한다. 엠브로스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정치란 범죄계급중에서도 특히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수단”이라고 했다. 우리 정치현실에 잘 어울리는 말인듯 싶다.
제1당의 당수라는 사람은 전과는 물론, 현재도 여러 건이 기소되어 법정과 유세장을 번갈아 드나든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재판도 자기가 받고 싶으면 받고, 싫으면 법정에 안나간다 대단한 초법적 특권이다. 사법체계의 유린이다. 이보다 더욱 가증스런 현상은 조국혁신당의 대표는 자기의 자녀 입시비리 등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도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엉터리 선거제도를 악용하며 정당을 급조하고 자기 사법처리의 방탄을 획책하고 있다. 사법에 대한 도전이자 불복이다. 이 사람은 불법행위 말고도 평소에 혼자 잘난척 오른 소리는 다하고 떠들더니 뒤로는 그와는 반대되는 비리와 내로남불의 언행이 탈로나서 온 국민들의 지탄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 당의 지지률이 20%가 넘는다니 정불의(正不義)를 구분 못하는 인지부조화의 정신 이상자들이 사회에 널려있다는 증거다. 아마도 망국적 팬덤과 병폐적인 진영논리의 산물일 것이다. 게다가 이 조국혁신당은 3년형을 받은 황운하를 비롯해 사법소추를 받고 있는 범죄 혐의자들의 집합처가 되고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아연 실색하게 한다. 도대체 이게 정치인가 3류 코미디인가? 그런가 하면 전 야당대표는 감옥에서 소나무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하고 자신의 범죄사실은 아랑곳 없이 독야청청 검찰개혁만을 외치고 있다. 이 또한 실소를 금치못할 일그러지고 형해화된 우리 정치판의 단면이다. 이러한 요지경 정치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정치란 무지, 무능, 수치, 권모술수 등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라는 나폴레온 힐의 명언이 정답으로 보인다.
한편, 여권의 행태들도 한심한 실수와 오판으로 국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정치감각이 전혀 없는 대통령실의 행보는 한동훈이 혈혈단신 뛰며 겨우 얻어놓은 민심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는 우를 범했다. ‘불통과 오만’의 프레임 속에 갇혀있는 대통령은 범죄혐의로 조사받는 사람을 주요국 대사로 임명했고,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사람은 언론인들을 불러놓고 과거 회칼테러 사건이나 발설하여 언론 협박이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모두가 정치 아마추어의 무개념과 무능의 소치이다. 문제는 이 사건 자체보다도 대통령은 문제의 대상인 이종섭 대사와 황상무 수석을 즉각 해임조치해야 했다. 헌데 질질 끌다가 큰 실기를 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도 왜 자기의 지지도가 30%대를 못넘어 가는지 뼈저린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여권에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말고는 선거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치를 안다는 여당의 모 시장은 평론가 처럼 한동훈을 두고 “셀카나 찍는 일 밖에 하는 일이 없다”고 빈정대며, ‘대통령과 자기 당을 비난만 하고 있다. 여당에 백해 무익한 존재다. 하기사 국민의 힘은 애당초 웰빙정당으로서 민심을 외면한채 처절한 투쟁과 단결과는 거리가 멀고, 자당의 당수였던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무뇌의 무리들이 지금도 득세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무슨 정치적 승리의 기대가 있겠는가? 이런 것들이 TK의 집토끼 마져 도망가는 이유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정책과 비전은 가려지고, 네거티브만이 흥행한다. '네거티브(negative)'란 사람의 특성상 부정적 내용이 긍정적 내용보다 강한 인팩트를 준다는 ‘부정성 효과 이론(negastive effect theory)’을 이용하는 선거전략이다. 미국의 스윈트 교수는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이란 저서에서 “국민들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사랑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네거티브도 금도가 있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막말이나 욕설을 해서는 스스로 정치3류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지금 각 후보들이 쏟아내는 매니페스토(선거공약 : manifesto)는 국면전환용이나 임기응변으로 급조된 것이 많아 신뢰가 가지 않는다. 매니페스토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야 한다. 영국의 노동당은 하나의 정책을 완성하는데 4-5년 걸쳐 만들어 선거공약집에 낸다. 헌데 우리 후보들은 모두가 즉흥적으로 천문학적인 재원을 들여 가난한 자 없는 지상천국을 만들어 주겠다며 포퓰리즘에 탐닉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이란 강(江)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허풍치며 하인인척 기만하는 인간이다.” 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정상배(politico)는 다음 선거만 생각하지만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부디 각 후보들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참신하고 내실 있는 참 공약으로 당당한 정치가로서 심판을 받기 바란다.
각 정당들도 이제는 낡은 이념적 굴레를 벗어나 지역 패권주의나 패거리 진영논리, 네거티브 캠페인이 아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뉴 패러다임으로 혁신의 정치를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사생결단의 극단적 제로섬(zero-sum)경쟁이 아닌 국민통합과 상생을 지향하는 성숙한 민주정치를 해야 한다. 아울러 개혁은 범죄자들이나 관심있는 검찰개혁보다는 정치개혁이 중요하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정원감축, 무노동 무임금 적용, 엉터리 비례대표제 개정, 정의롭고 유능한 국회의원 선출 등이 정치개혁의 시급한 과제임을 엄중히 지적하고자 한다.
논어의 안연(顔淵)편에서 공자는 정치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충실히 하여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다(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라고 했다. 과연 지금 누가 민생을 해결하고, 안보를 튼튼히 하며, 국민의 신뢰을 얻을 후보인지 국민들이 현명하게 판단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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